PC(USA) mourns loss of former Moderator and ecumenical leader - Korean

January 21, 2015

미국 장로교가 전 미국 장로교 총회장 및 에큐메니칼 리더의 죽음을 애도하다

장로교 총회 사무국

장로교 목사이며, 세미너리 교수이며, 미국 장로교와 여러 신앙 공동체들에서 존경받는 리더이신 이 승만 목사께서 급속도로 진행되는 형태의 암 진단을 받은 지 얼마되지 않아 애틀란타에서 1월 14일에 소천하셨다. 향년 83세였다.

2000년에 미국 장로교 총회장으로 선출된 이 승만 목사는 아시안 어메리칸으로서는 처음으로 그 자리에서 섬겼다. 그는 또한 1992-1993년까지 내셔널 교회 협의회(NCC)의장으로 섬기기도 했다.

미국 장로교 총회 정서기인 그래디 파슨스는 “이승만 목사님은 지칠줄 모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였습니다. 그는 한국 전쟁으로 인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일어나 선교 분야에서 세계적인 리더가 되셨습니다. 그는 겸손한 마음을 지니신 믿음의 거인이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이 승만 목사는 1931년 3월 25일에 그의 아버님께서 장로교 목사이셨던 한국 평양에서 태어났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했을 때, 그와 그의 남동생은 남쪽으로 피난하는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때 그들은 그들의 부모님과 네 명의 자매들을 북쪽에 두고 떠났다.

이 승만 목사는 1978년에 가족 중 한 사람이 그로 하여금 북쪽에 있는 자매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기 전까지, 28년 동안 그의 가족에 대해 아무런 소식도 알 수 없었다. 그 만남을 통해 그는 그의 어머니께서 8년 전에 돌아가셨으며, 그의 아버지는 공산당에 체포되어 감옥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쟁과 가족과의 이별이라는 고통스러운 경험이 그로 하여금 평생 동안 평화와 화해, 특별히 남한과 북한 사이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고무시켜주었다.

그는 미국으로 이민 온 후에 웨스트 버지니아의 Davis and Elkins College in Elkins에 들어가 1957년에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60년에는 루이빌 장로교 세미너리를 졸업했고, 그 해에 그와 그의 아내 해선이 결혼식을 올렸다. 이 목사는 1964년에 Yale Divinity School에서 M.Div.를 받았다.

이 승만 목사는 루이빌에 위치한 두 개의 작은 교회를 섬기면서 목회를 시작했다. 그는 1960년대 초반 루이빌 대학에서 캠퍼스 사역자로 섬기면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박사와 함께 시민 권리 운동에 참여했다.

이 승만 목사는 미국 연합 장로교 (UPCUSA—1983년 연합 이전의 북 장로교) 및 미국 장로교 총회 직원으로 25년 동안 섬겼다. 그는 중동 및 동 아시아 지역의 선교를 위한 코니네이터로 섬겼고, 그 다음에는 미국 장로교 세계 선교부의 부 책임자가 되었다.

미국 장로교의 전 정서기인 Clifton Kirkpatrick 목사는 “이 승만 목사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들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위대한 성도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교회를 매우 잘 섬기셨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나는 그가 교회를 위해 행한 모든 것들에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덧붙였다.

1998년에, 이 승만 목사는 버지니아 리치몬드에 위치한 유니온 장로교 세미너리에서 선교 및 복음 전도 방문 교수로 그리고 아시안 어메리칸 사역 및 선교 센터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2013년에 은퇴하였고, 그 다음 해에 Columbia Theological Seminary에서 글로벌 리더십 개발 실천 분야의 특별 방문 교수가 되어달라는 초빙을 받았다.

이 승만 목사가 애틀란타 병원에 입원한지 얼마되지 않아, 그의 가족이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그는 심지어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매일 교회와 사역과 세계를 위한 그의 삶에 대해 그리고 평생 사역을 해오는 동안 그가 쌓은 많은 관계들과 경험들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그의 생각과 마음을 많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업무를 다 마치지 못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교회로서 정의와 평화와 화해를 위해 사역을 지속해 나갈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승만 목사에게는 그의 아내 해선과, 그의 자녀들인 애나와 피터와 미나가 남겨져 있다.

장례 절차를 위한 정보를 위해, http://syngmanrhee.webs.com를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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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IP(EE. UU.) lamenta la pérdida del ex Moderador y líder ecumén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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