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ose welcome, not fear -Korean

November 18, 2015

Louisville

두려움이 아니라, 환영을 선택하자

우리는 온 세상과 함께 슬퍼하고 있다. 우리는 파리에서 뿐만 아니라, 베이루트와 바그다드와 이집트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으로 인해 아파하고 있다. 우리가 지니고 있던 어느 정도의 안전감마저 이렇게 끔찍한 사건들에 의해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게다가, ISIS가 폭력적 행위들을 매우 성공적으로 수행해 나가고 있는 가운데 그들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이 증가하고 있다.

그들이 우리로부터 많은 것들을 앗아갔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슬픔과 두려움 속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 많은 정치가들의 슬픔이 신속히 두려운 판단으로 이어졌다. 주지사들 중 절반 이상이 자기 주에 시리아 난민들이 유입되는 것을 거부하는 성명을 발표함으로서 그들의 시민들을 보호하려 하고 있다. 마치 테러분자들이 모두 시리아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어떤 이들은 현재 모든 난민들의 유입 거부를 요청하는데까지 치닫고 있다. 마치 그렇게 하면 그들 주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안전이 보장될 것처럼 말이다.

주지사들이 자기 주에 시리아 난민들이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기로 서약하고, 몇몇 대통령 후보자들이 난민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지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국민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우리는 우리를 두려움 속에 숨게 만드는 자들을 따르거나, 아니면 소망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수 십년 동안, 우리 나라는 전쟁과 핍박을 피해 온 자들을 환영하면서 그들에게 소망을 주기로 선택해 왔다. 1975년부터, 3백만 명이 넘는 난민들이 우리 국경 안에서 안전과 보호를 보장 받았다. 현재 천  백만명의 시리아인들이 학교에 갈 수 없거나, 그들의 땅에 들어갈 수 없거나, 그들이 집으로 알고 있는 곳에서 자녀들을 양육할 수 없다. 그들이 이러한 것들을 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의 정부를 포함하는 수많은 분파들에 의해 너무 오래 동안 테러를 당해 왔기 때문이다.

시리아 사람들을 위협해 오던 자들이 이제 서구를 위협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을 보호하려는 우리의 계획을 포기하기로 선택할 수 있는가? ISIS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들은 우리의 안전감을 빼앗아 갔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의 소망과 자비를 그들에게 넘겨줄 수 있겠는가?

우리가 미국 난민 입국 프로그램에 의해 고용된 사람들과 같은 자들에 대해 안전 유무  검사를 신속히 하면서, 적절한 반응을 하면서 전진해 가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테러 및 핍박으로부터 도망 나온 특정한 사람들이 시리안이기 때문에 혹은 어떤 특정한 다른 민족 그룹이기 때문에 거부하는 것은 부당하며, 우리 나라 법에 비추어 볼 때 불법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적절한 반응을 해야하며, 동시에 제한적이고 두려움에 덮힌 우리의 비전을 넘어 그들을 사랑하기로 선택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 제자들은 두려움 속에서 숨어 있었다. 그들이 문을 잠그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또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숨을 의도가 없다. 우리는 소망과 긍휼을 가지고 걸어가고자 한다. 작가이며 시인이며 평화 운동가인 Wendell Berry는 다음과 같이 썼다: “고립 속에서는 치유가 불가능합니다. 치유는 고립의 반대입니다. 상생이 치유입니다. 치유를 위해서는 우리가 다른 모든 피조물들과 함게 창조의 축제에 나아가야 합니다” (The Art of the Commonplace: The Agrarian Essays, “The Body and the Earth,” p. 99). 테러를 종식시키는 방법은 우리를 악마화하는 자들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정한 세속적 문화인들이 아니다. 우리는 환대하는 삶으로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두려움 속에 숨는 것은 잘못이다. 두려움이 테러의 탄약이며, 소망이 가장 훌륭한 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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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ige dar la bienvenida, no el tem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