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e the journey on - Korean

September 15, 2015

계속해서 전진해 가자

길을 잃어본 적이 있는가? 길을 잃고 심각한 상황에 봉착한 적이 있는가? 그랬다면 아마도 어린 시절이었거나, 아니면 하이킹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도시의 어느 부분이나 생소한 곳에서 운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중 갑자기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를 전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혹은 당신 자신과 관련하여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랐던 경험이 있는가? 다음에 무엇을 해야할지 혹은 어느 방향으로 틀어야 할지를 확신할 수 없었던 때 말이다.

어떤 면에서, 나는 최근 주말에  Montreat Conference 센터에서 열린 마틴 루터 킹 주니어 “REVISED AGENDA”에 참석한 후로 어찌할 지를 몰라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자란 나는 내 고향인 버지니아 리치몬드에서 보여졌던 인종차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화장실 문에 붙어 있던 “유색 인종만”(Colored Only)이라는 표지뿐만 아니라, 내가 들어가서 먹거나 타거나 앉을 수 있는 문들에 붙어 있던 “백인만”(White Only)이라는 표지를 기억하고 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오직 백인들만 다녔다. 법으로 그렇게 정해져 있었다. 내가 다니던 교회에는 오직 백인들만 있었는데, 그것은 사람들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 나는 오직 백인들과만 함께 지냈는데, 이것은 나의 순진함 및 내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사회적 분리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나의 어머니도 그것이 옳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예수님 또한 그것이 옳지 않은 것이라고 나에게 말씀하고 계셨다.

따라서 나는 그것이 옳지 않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방법들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다양한 방식들로 목소리를 높였지만, 지금은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이것과 관련하여 우리 나라에서 일어난 일들에 어느 정도 자기 만족이 있었다. 학교들이 인종차별을 없앴다. 많은 이웃들이 흑인들과 백인들을 동등하게 환영했다. 흑인 친구들을 우리 집에 초대했다는 사실을 내 친구들과 심지어 내 가족 식구들에게 더이상 숨길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고 흑인이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Montreat 센터에서, 나는 황급히 숲으로 달려 들어갔고, 그곳에서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을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 나는 길을 잃어 버렸다. 매우 훌륭한 저널리스트이며 뛰어난 주 강사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Leonard Pitts는 우리가 행한 일들로 인해 어느 정도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감사했다. 하지만 그 다음에 그는 우리 세상, 우리 나라, 우리 교회가 어떤 여행을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하면서 예를 들었다. 그 여행에서 우리의 목표는 “우리가 살고 있던 마이애미를 떠나 시애틀로 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이 우리가 거하기 원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여행 중에 캔사스 시티에서 멈추어, 마이애미에서 아주 멀리 간 것으로 인해 만족하고 있다. 캔사스 시티가 우리의 목표지가 아닌데도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목표지가 시애틀이라는 것을 항상 알고 있었다. 무엇을 성취했다는 우리의 자만감 혹은 성취감이 종착역이 되었으며, 우리는 더 이상 진짜 종착역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졌다.

갑자기 나는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 삶의 지위를 이용하여 변화를 일으키라는 도전을 받는다. 미국 장로교 총회장인 나에게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연단이 있다. 이곳은 정말 독특하고 특권이 있는 자리이다. 이 자리로 인해 나에게는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도록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런데 내가 뭐라고 말해야 하나? 내가 어느 쪽으로 틀어야 하나? 나는 상호 동의하는 관심사에 단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일으키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어디에서 “발견해야” 하나?

잃은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히 생각하는 동안 내가 경험했던 또 다른 사건이 떠올랐다. 10년 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걸프만을 강타했던 때의 일이다. 아메리칸 적십자 대표가 나에게 그녀와 그녀의 직원들을 대표하여 루이지애나 주지사에게 가서 그 재앙에 즉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다. 나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대형 컨벤션 센터에서 머물고 있던 베이튼 루지의 어느 피난 시설에 간적이 있었다. 그 지역과 주의 당국자들이 나를 안내해 주었다. 그때 갑자기 작은 소년이 내 다리를 붙잡았다. 그는 다섯 살에서 여섯 살 정도로 보였다. 그가 나에게 무엇인가 말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그의 말을 듣기 위해 내가 몸을 숙였다. 여러 사람들이 나를 수행하고 있었기에 내가 “관직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고 그 소년에게는 내가 “중요한” 어떤 사람으로 보였던 것 같다. 그는 “아저씨가 미스터 적십자인가요?”라고 물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아니지만 “적십자를 위해 일하고 있어. 무엇이 필요하니? 내가 무엇을 도와줄까?”라고 물었다. 그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선생님, 엄마를 찾을 수 없어요. 허리케인 때문에 엄마를 잃었어요. 그후로 엄마를 보지 못했어요. 엄마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나요?  엄마를 잃어버렸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 소중한 아이가 엄마를 찾았는지에 대해 모른다. 나는 사람들이 그 엄마를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그를 찾아가 엄마에 대해 물어 볼 수 없었다. 그 중요한 순간에, 나는 내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고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 작은 소년, 그리고 그의 엄마가 길을 잃었다. 어떻게 잃었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다만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그들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없었다.

나는 미국 장로교인들인 우리가 계속해서 길을 잃은 상태로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에 소중한 존재들이며, 우리의 사랑스러운 부모와 연합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제 우리 모두가 우리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불의를 종식시키고, 무지에 대해 언급하며, 사람들이 거리에서 안전하게 걸어다니는 것을 도울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다른 사람들 또한 그들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 어린 소년이 그의 엄마를 찾았다고 생각해 보자. 그는 흑인 아이였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흑인 아이였기에 그가 어린 시절 및 청년의 시기에 다시 “잃을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것은 백인인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상실감일 것이다.

우리는 시애틀을 향해 계속 나아가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를 찾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그리고 목표를 향해 계속 전진해 나가기 위해 우리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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