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서 화해자가 되기

미국 장로교 안의 노회들에서 새롭게 선출된 노회장들의 최근 모임에서, 나는 분열이 있는 노회나 교회에서 “화해자”의 역할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나누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 때에 내가 나눈 것들을 몇 가지 나누어 보려 한다:

  1. 먼저 기도하라.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홀로 기도하라. 그 다음에 대화를 기도로 시작하자고 제안하라. 이러한 시작은 당사자들로부터 문제를 제거하고, 그리스도께서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초청하는 토대를 놓아 준다. 이것은 또한 당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중점 사항으로 다루지 않도록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2. 경창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유지하라.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든지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서로를 존중하자는 기본 규칙들을 세움으로서, 그들이 서로를 공격하는 일에 시간을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분노와 고통의 소리를 듣는 것은 성공과 기쁨의 소리를 듣는 것 만큼이나 중요하다.
  3. 당신이 화해자의 입장에 있다면 편을 들지 마라. 고린도 전서 13장 12절의 말씀을 인식하라: “지금 우리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게 봅니다.” 우리들 중 아무도 전체의 진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여전히 계시되어야 한다. 상대방의 “희미한 거울들”로부터 배우며, 당신이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도움이 되는 새로운 진리들이 있는지 살펴보라.
  4. 미국 장로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확언하라. 우리는 죄된 인간들로 구성된 교회이다. 우리는 실수를 범한다. 동의하지 않는 것은 죄가 아니다. 판단하는 것이 죄이다. “너는 …하지 말지어다.”
  5. 의견이 아니라, 사실을 부드럽게 진술하라. 화해자로서, 당신은 사실들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대화가 단순히 주관적인 의견들로 난무하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
  6. 성경을 당신의 토대로 사용하라. 교역 장로와 사역 장로가 안수 받을 때에 하나님의 권위있는 말씀으로 인정한다고 서약했던 성경이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보여줘라. 하지만, “권위있는”이라는 말이 모든 사람들이 성경 해석에 동의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기억하라. 그것 또한 희미한 거울들을 통해 행해진다.
  7. 자료들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하라. 교회의 특정한 입장들에 대한 염려들이 있다면, 노회 총무나 루이빌 총회로 전화를 하라. 직원들은 교회가 취하고 있는 다양한 입장들에 대한 이론적 배경과 당위성을 알아볼 수 있다. 사람들은 너무도 자주 그들 자신들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해석하는데, 그러한 해석들이 올바르지 않은 경우들이 많이 있다.
  8. 가능하면, 문제를 지닌 당사자들과 만나서 대화하라. 전화를 통한 대화는 차선책이며, 그 다음으로는 이메일, 그 다음에는 편지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편지를 쓰는 것은 화해를 위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방법이다. 편지를 통해서는 감정을 읽기가 어려우며, 내용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물어볼 수 없다. 반면에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 책임있게 말하는 것에 도움이 되고, 후속조치를 용이하게 할 수 있다.
  9. 다른 당사자들 사이의 공통 분모를 찾아내라. 가장 기본적으로,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주와 구세주라는 것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공통 분모를 찾게 되면, 당신은 그 위에 추가적인 연결고리들과 유대 관계를 세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10.  교단과 관련된 이슈들을 중재하고 있다면, 미국 장로교의 규칙 및 규정에 대해 흔들려서는 안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람들은 서로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비 진리들을 말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교회에 관한 많은 대화들에서 매우 자주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우리 헌법의 일부분인 규례서가 무시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것이 사람들이 듣고 싶은 것을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규칙들과 규정들은 기도하면서 만들어진 것들이고, 장로교 정치에 따른 것들이다. 사람들이 그것을 바꾸고 싶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무시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 교단의 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화해자가 되는 다른 방식들이 있지만, 그러한 과정을 시작할 때에 위에 열거한 것들이 하나의 토대로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섬기고 있는 분이 하나님이지, 당신의 지역교회나 미국 장로교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항상 담대히 나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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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 una persona reconciliadora en la igle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