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교회

최근에 버지니아 Roanoke의 지역 신문에 Timothy Buchanan이라는 사람이 쓴 기사가 실렸다. “Death by Dishonor” (불명예로스러운 죽음)라는 제목의 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다:

“미국 장로교는 이제 죽었다. 미국 장로교는 성경 말씀에 충실하고, 죤 낙스와 같이 위대한 개혁자들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오래 동안 싸움을 해 왔지만, 결국 미국 장로교 (장로교들 중에서 자유주의적 입장을 따르는 교단) 리더들이 기권을 하고 말았다. 당신 주변의 미국 장로교회는 곧 동성 결혼을 집례할 것이다. 이 싸움에서 높은 윤리의 고지가 사탄에게 넘어갔다.”

버지니아에 위치한 Blacksburg Presbyterian Church의 목사인 Catherine Taylor는 그 기사에 답변하는 글을 투고했다. “Timothy Buchanan이 쓴 글은… 적시에 실렸다. 즉, 세계 도처의 교회가 분개한 종교 열광주의자들의 표면적 승리를 기억하는 때인 고난 주간에 말이다. 예수님 당시의 제사장들과 박식자들이 그를 사형시키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주지시키기 위해 그분의 말씀을 왜곡하면서 예수님께서 사탄과 한 패라고 선포한 것과 같이, 부캐넌은 미국 장로교의 죽음을 기쁘게 선포했다.”

그녀는 부캐넌이 내린 것과 같은 사형 선고는 처음있는 일이 아니라고 말을 이어갔다. “이러한 선고는 독립 전쟁 전에 노예 제도의 폐지를 위해 싸운 장로교인들에게, 지난 세기 동안에 여성 안수를 지지한 교회들에, 그리고 시민권 혹은 평등권의 시대에 통합을 위해 힘쓴 자들을 향해 내려졌다. 교단적인 차원에서 어떤 공적인 절차를 밟을 때마다—항상 수년 동안의 연구와 토론 이후에—패배한 측의 누군가가 교회가 죽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미국 장로교는 오늘도 건재하며 이 나라와 세계에서 사역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

캐써린에게 감사한다. 미국 장로교 제 221차 총회장으로서, 나는 지난 8개월 동안 10개국과 20개 주들을 다니면서 세계 도처에서 우리 교단과 우리 교단의 안녕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장로교인들을 만나보았다. 나는 2013년에 우리 교단에 가입한 수천 명의 사람들 중 일부를 만나보았으며, 그들 중 대다수는 교회가 단순히 비판적인 존재가 아니라, 정말 교회가 되고자 하는 교회를 마침내 찾게 된 젊은이들이었다. 세계 도처에서 종교의 세속화가 주된 이슈가 되고 있는 이러한 때에 이렇게 새로 교단에 가입한 사람들은 분명 죽어가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나는 170만 성도들 사이에서 우리 교회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거나 느끼지 못하고 있다.

우리 교단은 우리 사회와 같이 급진적 변화를 겪고 있다. 그러한 것들 중 일부는 실망스러운 것들이며, 그것들로 인해 많은 장로교인들이 극심한 마음의 아픔을 경험하고 있다. 반면에 다른 변화들에 대해서는 잘 포용하면서 축하하고 있다. 교인들의 숫자가 줄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가족”에서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떠나는 모든 사람들로 인해 아파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잘 이해하도록 도와주며, 또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다. 나는 교회에서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거의 매번 고린도 전서 13장의 말씀에 나오는 말씀--“우리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게 본다”—을 나눈다. 우리는 정말 이 말씀을 믿어야 한다. 우리 중 누구도 진리를 온전히 아는 자가 없다. 우리 모두는 어느 날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볼 것이며,” 진리가 계시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더욱 배워가는 과정 중에 있다.

나는 부활절을 보낸 우리들의 초점이 하나님 말씀에 대한 우리 자신의 입장 혹은 잘못된 입장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께 맞추어지기를 바란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자유 진영 혹은 보수 진영”과 관련하여 어느 쪽에 속하든지에 상관없이, 이 메시지는 우리의 “할렐루야”를 받기에 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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