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난관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예비하다
'성탄의 기쁨 특별헌금', 재정 지원을 통해 믿는 이들을 돕다
루이빌 - 캐서린 콕스는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25세였던 콕스는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리하여 고향인 앨라배마주 커스컬루사를 떠나 뉴올리언스의 제이비어 대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첫 학기를 절반쯤 마쳤을 때 쌍둥이를 임신했음을 알게 되었고, 가족의 지원을 받으면서 아이들을 기르기 위해 고향 터스컬루사로 돌아왔다.
"게다가 아버지가 교사는 돈을 많이 벌기 어렵다고 하셨고, 그래서 경영학을 전공으로 선택했었죠"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전 회계학을 싫어했고, 늘 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어요. 하나님은 오래 전에 저에게 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그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학교를 쉬고 자신과 자녀를 부양하기 위해 다양한 일을 하던 콕스는 스틸먼 대학에 등록했다.
콕스의 집 바로 뒤에 있던 스틸먼 대학은 콕스가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완벽한 장소였다.
캐서린과 같은 젊은 인재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길을 준비하는 것이 스틸먼 대학과 미국장로교 성탄의 기쁨 특별헌금의 존재 목적입니다. 콕스가 스틸먼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전도 유망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제공하는 특별헌금 덕분이었다.
1930년대부터 지속되고 있는 소중한 장로교 전통인 성탄의 기쁨 특별헌금은 임시 통합 기관 소속으로서 소수 인종 공동체를 섬기는 장로교 연계 학교 및 대학과 연금국의 재정 보조 프로그램에 균등하게 배분됩니다.
스틸먼 칼리지 는 1876년 아프리카계 미국인 목회자를 양성하는 학교로 장로교에 의해 설립되었고, 오늘날에는 미국장로교와 언약 관계를 맺고 있는 유일한 흑인 대학이다. 4년제 리버럴 아츠 칼리지인 스틸먼은 셰퍼즈 앤드 랩슬리 노회 와 리빙 워터스 대회 관할 지역에 속한 터스칼루사 서쪽에 105에이커 규모의 아름다운 캠퍼스를 가지고 있다.
"캐서린은 지식과 봉사, 신앙을 통해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섬김의 리더를 양성한다는 스틸먼 칼리지의 사명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학생입니다"라고 종교학 부교수인 마크 매코믹 박사는 말했다. "교사이자 평생 학습자로서 그는 교육에 대한 헌신을 통해 우리 장로교의 가치를 참으로 구현하고 있습니다."
졸업 직전 콕스는 스틸먼의 새로운 협력 교육기관인 아이 드림 빅 차터스쿨에서 7,8 학년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 자리에 지원하고 면접을 거쳐 합격했다. 이 학교는 앨라배마 주에서 역사적 흑인 대학(HBCU)과 차터스쿨 간의 첫 번째 협력 사례이다.
올해 가을 개교한 터스칼루사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무상 차터스쿨인 이 학교는 현재 6학년부터 8학년까지 학생들을 교육하고 있으며, 앞으로 해마다 한 학년씩 추가할 예정입니다.
"캐서린이 내린 결정들은 젊은이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면서도 전문성을 계속해서 개발하고자 하는 그의 열정을 잘 보여줍니다"라고 매코믹은 말했다. 캐서린이 스틸먼을 졸업하고 교사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성탄의 기쁨 특별헌금'이 장로교 관련 학교와 그곳의 학생들에게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지를 잘 보여준다.
재난을 넘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예비하다
블루리지 산맥에 둘러싸인 곳에서 암반 기초 위에 세워진 거의 100년 된 집에서 지내던 린 블레드소 목사는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야말로 산이 흔들리기 전까지는 그랬다.
2024년 허리케인 헬린이 플로리다에 상륙한 직후, 이 끔찍한 태풍은 미국 남 동부와 애팔래치아 산맥 남부를 관통하면서 엄청난 피해를 남겼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후 미국 본토에 상륙한 가장 치명적인 허리케인으로 분류된 이 재해는 여러 주에 큰 피해를 남겼다.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산악 지대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시편 기자의 시대에는 산이 위험한 곳이었을 테지만, 저는 우리 동네의 산이 위험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라고 블레드소 목사는 말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 페어뷰에서 남편 빌 라이언과 함께 살고 있는 그는 은퇴 후 몬트리트 장로교회에서 심방 사역자로 섬기고 있었다.
하지만 허리케인은 린 목사가 오랫동안 지켜온 안전한 삶의 기반과 발 아래의 땅조차 송두리째 앗아갔고, 그의 평온한 세상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계속 커지는 가운데 두 사람은 집 아래에서 토사가 무너져 '폭스바겐 크기'의 바위 덩어리가 앞마당으로 밀려오는 모습을 공포에 떨면서 지켜보았다.
하지만 꼭 필요하면서도 비용이 많이 드는 수리 작업이 언제쯤 진행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했다. 어떻게, 언제, 그리고 어떤 재정으로 우리가 재건할 수 있을까? 블레드소 목사는 깊이 고민했다.
두 사람과 지역사회는 막대한 비용에 직면한 상황에서도 재난이 초래한 트라우마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때 블레드소 목사는 연금국(BOP)의 재정 보조 프로그램을 통해 예상치도 못했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신뢰받는 미국장로교 기관인 연금국에서 지원금을 제공하여, 집을 다시 복구하는 부담을 덜어주었던 것이다.
"여러 해동안 '성탄의 기쁨 특별헌금'을 드렸지만 제가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라고 블레드소 목사가 말했다. "허리케인 헬린 초기, 연금국에서 넉넉하고 신속한 지원을 제공했던 것을 떠올릴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재정 보조 프로그램 담당자인 루스 애덤스는, 블레드소 목사처럼 많은 복지 혜택 가입자들이 이 프로그램의 보조금이 자연 재해나 예상치 못한 지출에 대한 재정 지원으로 제공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속해 있고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에 '성탄의 기쁨 특별헌금'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라고 블레드소 목사는 말했다.
교회와 일상을 연결하다
소런 브릭스는 미국장로교의 규례서 최신판을 펼쳐보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전혀 평범하지 않은 17세 소년인 소런은 뉴멕시코 앨버커키의 고향 교회인 제일장로교회에서 최연소 사역장로로 안수를 받은 고등학교 12학년 학생입니다.
소런이 미국장로교 헌법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그저 장로교 역사에 대한 흥미 때문만은 아닙니다. 고향 교회와 자신이 다니는 장로교 관련 학교 미놀 스쿨에 대한 사랑이 그의 열정을 불타오르게 했습니다.
메놀의 종교 과목 학과장으로서 상급 학년 종교 수업을 맡고 있는 존 시틀러는 4년 내내 소런의 지도교사였다.
"장로교 체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소런의 두 눈은 빛이 납니다"라고 시틀러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개혁주의 신학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푹 빠졌죠. 제가 개설한 선택 과목은 모두 수강했을 정도예요.”
19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풍성한 역사를 지닌 메놀 스쿨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남학생을 위한 장로교 기숙학교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학생 중 다수가 미국장로교 교단 내 히스패닉/라티노 지도자의 첫 세대가 되었다. 메놀 스쿨은 6학년에서 12학년까지의 학생을 가르치는 주간 및 기숙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는 30개국에서 온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고, 세계 전역에서 온 졸업생을 배출했다.
현재 메놀 스쿨은 소렌과 같은 젊은 교회 지도자를 교육하고 양성하는 이니셔티브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자하는 학생들을 위해 1년짜리 새로운 교육 과정을 개설했다.
이 학교는 전통적으로 학생들이 미래에 사역자로 부름받을 가능성을 중요시해왔다. 이에 발맞추어 개설된 "섬김으로 부르심"이라는 수업은 학생들이—궁극적으로 안수받은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개혁주의 전통에서 말하는 '소명'의 의미를 이해하고, 어떻게 일상의 삶 속에서 신앙을 실천할 수 있는지를 함께 모색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미국 내에 남아 있는 단 두 곳의 미국장로교 연계 중고등학교 중 하나인 메놀에서는 어떻게 우리만의 장로교 전통에 뿌리를 둔 특별한 것을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라고 메놀의 교목인 해너 스캔런 목사가 말했다. 그는 이 과목을 설계하고, 다양한 분과의 담당자로 이뤄진 팀과 협력하여 보조금 신청서를 작성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정말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에 걸맞은 깊이 있는 답을 원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스캔런 목사는 이 과정을 수강하는 학생들이 1년 동안 다양한 현장을 방문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학생들이 자신들의 미래 목회 진로를 고민할 때 “마음 속에 사람의 얼굴과 그 장소를 떠올릴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여기에는 미국장로교 안에서의 기회들도 포함된다.
“이 수업은 제가 교회에서 이미 하고 있는 일과 잘 연결될 것 같습니다”라고 소런은 말했다. “이 수업의 핵심은 친절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신앙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입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스캔런 목사는 이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이 산타페 노회 와 남서부 대회 안에서 다양한 봉사, 학습, 더 나아가 설교의 기회까지 경험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예, 우리는 젊은이들을 학문적으로 준비시켜 대학에 보내고 있지만, 장로교 학교이고 장로교 뿌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말 못하는 이들을 위로하시는 그분의 목소리를 찾아서
예언자적 목소리를 지닌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이 김진호 목사의 이야기 자체가 그의 노래이다.
한국의 장로교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 목사는 데이비드 E. 로스 목사를 만난 후 자신의 신앙 여정이 극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1961년부터 1980년까지 한국에서 사역한 장로교 선교사 데이빗 로스 목사는 아내인 엘런과 함께, 캠퍼스 선교와 청소년 전도에 전념했다. 김 목사는 로스 목사 부부의 "예수 전도팀"을 통해 성령 충만한 예배와 제자 훈련을 경험했고, 이로써 "치유되고 변화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악보 한 줄 읽을 줄 몰랐음에도, 하나님은 그의 입에 새 노래를 넣어주셨다.
"이 은혜의 계절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말씀을 묵상하던 중 성경 말씀을 가사로 삼아 찬양을 작곡하는 은혜도 누렸습니다"라고 김 목사는 말했다.
서울의 신학교에 진학하도록 부르심을 받기 몇 해 전, 그가 속한 연희동 장로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의 청년부는 성탄 전야에 교인들의 집을 찾아가 캐럴을 부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당시 보수적인 한국 문화에서 사회적으로 소외된 미혼모들을 위로하고 성탄의 기쁨을 나누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라고 김 목사는 회상했다. "우리는 모든 교우 가정에 주님께 드릴 성탄의 기쁨 헌금을 정성껏 준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성탄절인 다음날 청년들이 교인들의 선물을 미혼모 보호 시설에 전달할 준비하는 동안 자신은 예배당에 들어가 기도를 했다고 김 목사는 말했다.
"저는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주님께 직접 말씀을 구하며 기도했습니다.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주님께서 직접 말씀을 내려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라고 김 목사는 말했다. '주님, 이 말씀에 어울리는 곡조를 주셔서 잠시 스쳐가는 노래가 아니라 이 여성들이 평생 부르면서 기억할 수 있는 감사의 찬양이 되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김 목사는 옆에 있던 기타를 집어 들었고, "믿음으로", 그 구절에 어울리는 곡조를 받았다. "그날 이후 이 찬양은 한국교회는 물론 전 세계 디아스포라 공동체에서도 불리기 시작했고, 한 세대가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불리고 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또 한 세대가 흐른 지금, "성탄의 기쁨"이라는 선물이 다시 한번 김 목사에게 찾아왔다.
1989년부터 미국에서 주로 새로운 예배 공동체와 개척 사역을 섬겨온 김 목사는 연금국 복지 계획의 오랜 회원으로서 은퇴 후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그때 한 목회자 친구가 연금국의 재정 보조 프로그램에 지원해보라고 권했고, 그의 기도가 응답을 받았습니다.
The trusted PC(USA) agency has since provided Kim with ongoing income and housing supplements to ease the hardships that he faces, having earned only a modest income throughout his years of service.
"은퇴 목회자를 지원하는 것은 정의의 문제입니다"라고 연금국 재정 보조 프로그램 담당자 루스 애덤스는 말했다. "김 목사님은 수십 년 동안 적은 보수를 받으면서도 영적 지도와 정서적 지원, 공동체 리더십을 제공해왔습니다. 오랜 세월 헌신과 희생을 바쳐 온 김 목사님 같은 목회자들은 미국장로교의 공동체적 지원 덕분에 걱정없이 은퇴하실 수 있었습니다."
성탄의 기쁨 특별헌금에 함꼐해주셔서, 장로교 연계 학교와 대학이 소수인종 공동체 안에서 삶을 바꾸는 경험을 만들어 내도록 도와주십시오. 더불어 연금국의 재정 지원 프로그램이 어려움에 처한 과거, 현재, 미래의 리더들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도록 함께해주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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