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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byterian News Service

말 못하는 이들을 위로하시는 그분의 목소리를 찾아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사역을 했던 은퇴 목회자,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운 성탄의 기쁨 특별헌금에 찬사를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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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v. Jinho Kim and Hannah
김진호 목사가 아내 한나와 함께 찍은 사진(제공 사진).

December 2, 2025

에밀리 엔더스 오돔

Presbyterian News Service

루이빌 – 예언자적 목소리를 지닌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이 김진호 목사의 이야기 자체가 그의 노래입니다.

그것은 김 목사가 젊은 시절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 변화되었을 때 그의 마음에서 처음 터져 나온 노래였습니다. 그 순간은 마치 메시야를 잉태했다는 소식을 듣고 즉흥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던 마리아의 모습과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Although born and raised in a Presbyterian household in South Korea, Kim said his faith journey changed dramatically after he had taken part in the “Anti-Yusin” student protest movement of the 1970s, which challenged the 1971 election and authority of Park Chung Hee as president.

"정보기관의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바람에 오랫동안 꿈꾸고 준비해온 고위공무원 시험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죠."라고 김 목사는 말했습니다. 그는 당시 정치외교학 학사학위를 막 취득한 상태였습니다. "절망의 골짜기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그는 1961년부터 1980년까지 한국에서 사역한 장로교 선교사 데이빗 로스 목사를 만났습니다. 로스 목사와 그의 아내 엘런은 당시에 캠퍼스 선교와 청소년 전도에 중점을 두고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김 목사는 로스 목사 부부의 "예수 전도팀"을 통해 성령 충만한 예배와 제자 훈련을 경험했고, 이로써 "치유되고 변화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악보 한 줄 읽을 줄 몰랐음에도, 하나님은 그의 입에 새 노래를 넣어주셨다.

"이 은혜의 계절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말씀을 묵상하던 중 성경 말씀을 가사로 삼아 찬양을 작곡하는 은혜도 누렸습니다"라고 김 목사는 말했다.

하지만 김 목사의 삶에서 마리아와 같은 증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서울의 신학교에 진학하도록 부르심을 받기 몇 해 전, 그가 속한 연희동 장로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의 청년부는 성탄 전야에 교인들의 집을 찾아가 캐럴을 부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당시 보수적인 한국 문화에서 사회적으로 소외된 미혼모들을 위로하고 성탄의 기쁨을 나누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라고 김 목사는 회상했다. "우리는 모든 교우 가정에 주님께 드릴 성탄의 기쁨 헌금을 정성껏 준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성탄절인 다음날 청년들이 교인들의 선물을 미혼모 보호 시설에 전달할 준비하는 동안 자신은 예배당에 들어가 기도를 했다고 김 목사는 말했다.

"저는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주님께 직접 말씀을 구하며 기도했습니다.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주님께서 직접 말씀을 내려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라고 김 목사는 말했다. "그때 마치 도끼가 물 위로 떠오르듯 한 시편이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시편 117편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주님, 이 말씀에 어울리는 곡조를 주셔서 잠시 스쳐가는 노래가 아니라 이 여성들이 평생 부르면서 기억할 수 있는 감사의 찬양이 되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김 목사는 옆에 있던 기타를 집어 들었고, "믿음으로", 그 구절에 어울리는 곡조를 받았다. "그날 이후 이 찬양은 한국교회는 물론 전 세계 디아스포라 공동체에서도 불리기 시작했고, 한 세대가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불리고 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또 한 세대가 흐른 지금, "성탄의 기쁨"이라는 선물이 다시 한번 김 목사에게 찾아왔다.

1989년부터 미국에서 주로 새로운 예배 공동체와 개척 사역을 섬겨온 김 목사는 연금국 복지 계획의 오랜 회원으로서 은퇴 후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그때 한 목회자 친구가 연금국의 재정 보조 프로그램에 지원해보라고 권했고, 그의 기도가 응답을 받았습니다.

The trusted PC(USA) agency has since provided Kim with ongoing income and housing supplements to ease the hardships that he faces, having earned only a modest income throughout his years of service.

그는 1930년대부터 지속되고 있는 소중한 장로교 전통인, 성탄의 기쁨 특별헌금 덕분에 넉넉한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특별헌금은 연금국의 재정 보조 프로그램과 임시 통합 기관 소속으로서 소수 인종 공동체를 섬기는 장로교 연계 학교와 대학에 균등하게 배분됩니다.

"은퇴 목회자를 지원하는 것은 정의의 문제입니다"라고 연금국 재정 보조 프로그램 담당자 루스 애덤스는 말했다. "김 목사님은 수십 년 동안 적은 보수를 받으면서도 영적 지도와 정서적 지원, 공동체 리더십을 제공해왔습니다. 오랜 세월 헌신과 희생을 바쳐 온 김 목사님 같은 목회자들은 미국장로교의 공동체적 지원 덕분에 걱정없이 은퇴하실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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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ms are pictured with their three adult children (contributed photo).
김진호 목사 부부가 세 명의 성인 자녀와 함께 찍은 사진(제공 사진).

또 한번의 성탄을 맞이하면서 김 목사와 사모인 한나, 세 자녀(그 중 한 명은 곧 부모가 될 예정입니다)는 함께 감사하며 "동방박사 세 사람이 첫 성탄절에 기쁨으로 귀한 선물을 바쳤다"는 이야기를 되새깁니다.

"주님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행 20:35]"라고 김 목사는 말했습니다. "아낌없이 성탄의 기쁨 특별헌금을 드려서 지금 내가 이 선물을 받을 수 있게 해준 미국장로교의 모든 형제 자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모두가 우리의 본보기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참된 기쁨의 제물이신 그분처럼 '산 제물'이 되길 기도합니다."

김 목사의 인생 여정과 목회 활동을 돌아보면서 애덤스는 그가 바로 그런 '산 제물'이며 미국장로교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를 아낌없이 지원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탄의 기쁨 특별헌금에 동참함으로써 우리는 긍휼과 청지기 의식, 공동체 돌봄이라는 가치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라고 애덤스는 말합니다. "이 특별헌금은 어떤 믿음의 종도 불안함 없이 은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들이 많은 사람들이 평화와 안정을 찾도록 도운 만큼 그들을 존중하고 그들도 평화와 안정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우리 지도자들을 돕는 미국장로교 총회 연금국의 재정 보조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성탄의 기쁨' 특별헌금에 기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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